물결무늬와 돌의 에너지, 촉각성(Tactility)

2022. 1. 14. 11:04CRITIQUE

조광석(Jo Kwangsuk 미술평론가)

 최근 예술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작가들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형식, 주제, 양식 그리고 새로운 재료와 테크닉을 수용하고 재구성하면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동시대 조각은 전통적인 표현과 다소 관련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지속적인 자기발견을 시도하며 자기 동일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모더니즘미술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이후 미술은 자체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 전통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였으며 개별 예술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주체성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모더니즘에서 변증법적인 자기비판 논리는 시대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속 계승되고 있다.

미술 작품들은 예술의 여러 장르와 마찬가지로 외적 형식만큼 다양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크게 두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에 직접 발언을 하거나 예술 내적 문제에 집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형식은 여러 가지 있지만 사회참여이냐, 심미적이냐의 의도가 항상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두 경우가 서로 연계되어 복잡한 형식의 작품들이 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것이다. 즉 사회적인 것이나 심미적인 것의 상관관계에서 권력과 이데올로기, 예술적, 인위성 등이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미술의 본질이란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작가가 살고 있는 세대의 관점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예술의 상황은 시대적 흐름에 민감하게 작동하고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성재의 작품에서 물결무늬는 형태를 지니지만 모방의 범주를 벗어난다. 파도처럼 율동하는 무늬는 인위적이면서 돌의 질감을 들어내고 있다. 물결무늬는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형상과 다르며 입체적이기 때문에 조각의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보는 관람자는 물질화된 질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알 수 있다. 평평하게 반복되는 무늬는 재료가 지닌 내면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고 시각적으로 형상이면서도 추상형식을 보게 한다. 작품은 추상적 언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입체성을 함축하고 있다. 재료의 있는 그대로 특성을 드러낸 모더니즘 미술의 순수 시각성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삶의 경험에서 얻은 단편들과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전통적인 조각적 환영이라는 개념을 조각에 적용한다. 형태와 구조에 관심을 집중한 것은 그것이 일종의 사물의 특성과는 차별화된 시각이다.

 장성재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상징과 추상표현주의와 유사한 관계를 지닌다. 작품의 재료인 돌의 외형은 땅속에서 채굴되었을 때의 자연 상태를 재현하고 있다. 작업과정은 자연의 본성, 자연 속에 숨어있는 에너지를 겉과 속의 대비를 구성하고, 물결무늬의 연속적인 형식은 에너지의 흐름과 시간을 모티브로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가 조각한 물결무늬는 암석의 물리적 과거역사의 시각화이다. 지구상의 암석은 70%이상이 퇴적암이라고 한다. 그 암석은 물리적으로 자체에 감추어진 에너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실제 외형에서 볼 수 없지만 돌의 내부에 숨겨있는 에너지 때문이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가 생명체의 조직이 성장하면서 동심원의 줄무늬를 만들고 내부에서 외부로 파동처럼 확대되며 원천적인 생명력이 형상화된 것처럼 퇴적암은 물의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되었고 작가는 물의 흐름과 에너지를 보았던 것이다. 작가의 손끝에 의해 돌이 간직하고 있던 에너지를 찾아내고 인위적인 작용이 단순한 물질로서 상태를 초월하게 된다. 즉 자연물로서 돌에 대한 인상을 재구성하면서 돌의 물질적 상황을 넘어선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패턴들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고 공간에 리듬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표면에 깊이가 다른 형태로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 암석에 숨어있는 또 다른 생명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물결무늬는 돌의 공간 구획을 허물고 부분 부분이 공간상에 펼쳐져 시각적인 밀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물결무늬의 반복적인 배치는 화면 위에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으로 처리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촉각적(Tactility)이면서도 회화의 시각성(opticality)과 연관되어 있다.

추상미술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제작되어지지만 쉽게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언어놀이 형식과 비교 될 수 있다. 언어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규칙에 의해 작동하며, 언어행위가 규칙에 따르는 행위라는 사실은 주관적,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추상작품도 언어체계로서의 의미를 함축하고 언어와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규칙을 갖게 될 때 사람들 사이에 소통 되고 "예술적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물결무늬는 돌에서 공간적 위계관계가 있는 규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의 의미는 형이상학적 설명이나 정의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작품을 보고 느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추상 작품은 감성과 언어가 맞닿은 지점에 작품이 있고, 그것을 보고 얻게 되는 소통의 차원이 작품의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수용은 관람자와 무관하게 작가에 의한 독자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형식과 연관 안에서 규정된다.

장성재는 전통적인 조각의 관습을 물결무늬에 접목시킨다. 형태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깎아 내는 ‘테크닉의 관습은 중요한 것이며 본질적이다’라고 강조한 것이다. 물결무늬로 지각 될 수 있는 작품의 본질은 추상적인 형태와 모더니즘 관습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예술의 전통을 따르는 ‘깊이의 요구(deep needs)’에 상응하는 암시가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장성재는 조각의 자율성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감각적으로 체득하고 조각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우리의 인식을 구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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